Loading…

언약신학: 쟁점으로 읽는다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왜 언약 신학인가?” 서양사를 대학에서 전공하던 필자를 사로잡았던 질문이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이 서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듯이 17세기 청교도의 언약 사상은 근대사를 향한 사회 변동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일찍이 하버드 대학에서 청교도 연구의 기초를 놓은 페리 밀러(Perry Miller, 1905–1963)가 초기에는 필자에게 권위 있는 안내자였다. 이러한 밀러가 교회사 전공 신학도가 된 필자에게는 오히려 극복해야할 과제로 바뀌었다. 특히 청교도 계약(언약) 사상에 대한 그의 테제는 적지 않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약이라는 주제로 구약과 신약을 꿰뚫고 일관성 있고 명쾌한 논리로 성경 전체를 풀어낸 수많은 저작들 속에 푹 빠져들게 된 필자는 거기서 언약신학의...

비처(Ernst Bizer), 찰스 맥코이(Charles McCoy), 바질 홀(Basil Hall), 발터 키켈(Walter Kickel), 그리고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rmstrong) 등은 주로 칼뱅 이후 개신교 정통 신학 안에서 폭넓게 수용된 개신교 스콜라 신학에 주목하고 개신교 스콜라 신학의 소위 ‘합리주의’가 칼뱅의 신학과 얼마나 다른지를 부각시켰다.2 이후 70–80년대에 칼뱅과 칼뱅주의자들 사이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테제를 확산시켰던 학자들은 예정론과 속죄론 그리고 청교도의 언약 신학 등을 더욱 폭넓게 논의했다. 대표적인 학자들은 제임스 토란스(J. B. Torrance), 홈즈 롤스톤 3세(Holmes Rolston III), 로버트 켄달(Robert T. Kendall), 찰스 벨(Charles Bell) 등이다. 특히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밀러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단절성을 부각시켰다. 예를 들어 토란스는 17세기 언약 신학을 “율법주의”로
Page 24